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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망 책 인.png

 동화의 시작은 항상 우리의 주인공을 소개하며 이야기의 문을 엽니다. 마계에는 소망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쩌면 마계와는 어울리지 않다 말할 수 있는, 주위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마녀가 있었습니다. 그 마녀는 누군가에게 저주와 고통을 준다기보단 오히려 행복을 퍼뜨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녀와는 다른 그저 마법을 쓸 수 있는 아이였을 뿐입니다.

 유소망은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아이였습니다. 마법을 누구보다 잘 쓴다던지, 머리가 뛰어나게 비상하다던지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유소망은 그 자체로 순수했기 때문에 언제나 눈에 띄는 아이였습니다.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에 성심껏 답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또 그 사랑을 나누는 것에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동화에서 그려지는 마녀의 모습과 유소망은 정 반대로만 보였습니다. 그 동화 속의 마녀들을 보면서, 그들이 낳은 결과를 불쌍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유소망이었습니다. 

 

 어느 날, 유소망은 책 속에서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됩니다. 허영심 탓에 발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빵을 밟고 연못 안으로 사라진 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연못 안으로 들어간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돌아왔는지, 아니면 영영 사라진 건지 아무도 알지 못 하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워 하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허영심 탓에 빵을 밟은 아이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유소망은 마냥 가슴아프기만 했습니다. 빵을 밟고 연못을 건너려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때문에 사라져버리다니요. 즐거운 책을 읽고 싶었지만 왜인지 착잡해진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의문도 있었습니다.

 책을 전부 읽고 난 유소망은 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루의 마지막을 이야기 책으로 끝내려던 참이었으므로, 이제는 잘 시간이었습니다. 잘 준비를 전부 마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음에도 왜인지 바로 잠에 들 수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갔을까요? 혹시 아직 연못 밑바닥에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유소망은 제가 가장 아끼는 인형을 껴안았습니다. 유난히 기억에 밟히는 이야기였습니다. 먹을 것을 소중히 해야 하지만 그게 그 친구의 본성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유소망은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의 풍경은 온통 초록색이 가득한 숲 속이었습니다. 분명 이 곳에서 잠들지 않았음을 유소망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요? 불안함보다는 의문이 앞섰습니다. 유소망은 걸었습니다. 걷고, 또 걷고, 제 집이나 혹은 제 학교가 눈에 띄기를 바라면서요. 애석하게도 이 곳은 눈에 익은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가볍게 밟히는 흙의 느낌을 이상하다 느끼면서, 유소망은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요. 유소망의 앞에는 큰 호수가 하나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있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처럼 보였습니다. 이곳 저곳에 이끼가 끼어있고, 어두운 물 속에 헤엄치는 인영 같은 것은 잘 보이지 않았으며, 수면에는 알 수 없는 녹조류들이 떠다니는, 유소망의 눈에는 그 곳이 마치 늪지대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가족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먼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유소망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까가지 이상하게만 여겼던 흙의 밟는 감촉은 아마도 호수에서 나온 수증기가 떠다니다 흙에 안착했기 때문이겠지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했습니다. 눈을 꼭 감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물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무서웠습니다. 용기를 내서 한 발자국 호수 위로 발을 내딛었습니다.

 마치 물이 가득한 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에, 유소망은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습니다. 한 발자국 뿐이었음에도 분명합니다. 자신은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갔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 마다 발을 타고 올라오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은 자신이 지금 상식적으로 하지 못 할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인간계에 있는 종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신으로 추대하던가요? 물 위를 걷고 있다는 이상한 감각에 유소망은 살짝 떴던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 제가 걷고 있는 호수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일렁임은 있었습니다. 분명히 물결까지도 느껴졌습니다. 다만 제 두 발이 물 위에 살포시 올라와있는 것이 전혀 현실감 없었을 뿐입니다.

 유소망은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큰 호수이지만 이대로라면 금방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발목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뿌리치기도 전에 그 누군가는 제가 지금까지 서 있던 호수의 안으로 유소망을 끌어당겼습니다. 마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 처럼, 순식간에 유소망은 물 안으로 빨려들어가다시피 했습니다. 눈을 감을 새도 없었습니다. 호수의 안은 생각보다 깊었습니다. 알지 못 하는 동물들과 식물들, 그 밖에 다른 것들이 눈 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뇌리에 박힌 것은 감정들이었습니다. 호수의 밑바닥에는 인간들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잠들어있었습니다. 원망, 슬픔, 분노, 절망, 그 모든 것들이 유소망의 눈에 들어와서 자신은 이러한 감정이라고 소개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이야기할 틈도 없이 유소망은 더 깊은 곳으로, 심지어는 호수의 밑바닥보다도 깊은 곳으로 끌려들어갔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유소망은 밑바닥의 밑바닥, 그 끝까지 닿았습니다. 그 곳은 말하자면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글우글했습니다. 무언가 줄을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말 싸움을 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불안해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천장과 바닥에는 뱀과 거미가 우글우글하고, 몇몇 거미들은 사람들의 발 위에 집을 짓고 있기도 했습니다. 유소망은 이 곳이 어디인지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모두가 울고 있지 않지만 속에서부터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저 마치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렬처럼만 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기둥 한 쪽에 그대로 붙어있는 아이 모습의 석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 석상은 전혀 움직이지도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머리는 온통 진흙 투성이에, 입고 있던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서 몸 안 쪽의 상처가 드러났습니다. 예쁜 구두를 신고 있었던 게 분명했습니다. 또, 발 아래에는 빵 조각이, ...어? 분명 빵 조각이라면 오늘 제가 읽은 책의 주인공이 밟고 지나가려 했던 것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석상의 모습은 동화책에 그려져 있던 아이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걸요. 움직이지도 못 하고 가만 고정되어있는 석상의 모습에 섬찟 소름이 돋았습니다. 왜 이 친구는 여기에 있는 걸까요? 제가 빠진 호수가 이 친구가 빠졌던 연못이었던 걸까요? 그러면 이 친구는, 빵을 밟아서 연못을 건너려다 빠진 그 날 부터 지금까지 이 상태로 계속해서 있었던 건가요?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분명 아이는 비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결과도 전부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유소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긴 시간동안 이 곳에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었을까요. 그러면 아이에게 이 시간은, 분명 속죄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빵을 밟고 연못을 건너려 한 것이 이리 고통받을 만큼의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소망은 막 울 것 같은 얼굴로 석상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석상의 눈동자가 데굴, 하고, 굴러간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굴러간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굴러갔습니다. 놀란 유소망은 석상을 계속해서 바라보았습니다. 분명히 석상은 움직였습니다. 눈동자 뿐이지만요. 유소망은 곧바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직 이 아이는 살아있다고요, 나를 보면서 움직일 수 있다면 다시 온전히 움직일 수 있다는 희망을 떠올려낸 것입니다. 비록 지금 어떤 모습이던간에, 아이는 고통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책이 언제 쓰여진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은 아닐 것입니다.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이 친구는 다시 움직이기를, 유소망은 처음 보는 이였음에도 바랐습니다.

 

 유소망은 제 키보다 훌쩍 큰 석상을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마치 평소에 그리 잘 하던, 제 친구들에게 애정을 담아서 안아주듯이요. 그러고는 석상에 계속해서 눈에 맺혀있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소망의 눈에는 그 석상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나 안타깝고 슬퍼보였으니까요. 자신의 온기와 석상의 냉기가 닿았습니다. 편안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도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포옹은 어떠한 포옹보다도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석상은 더 의미가 없는 석고 기둥 하나일지라도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 그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유소망은 하고 있었습니다. 유소망은 따스히 안고 있던 기둥을 놓고는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석고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기둥에서 아이의 모습이 없어졌습니다. 분명히 아이가 새겨져있는 것만 같던 기둥은 그대로 존재했습니다. 아이의 모습만이 온데간데 없어진 것입니다. 유소망은 한참을 그 기둥만 바라보았습니다. 주위가 얼마나 시끄럽든, 자신의 몸이 서서히 차가워지든, 그것은 더 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어 마냥 기둥만 바라보던 그 때, 새 한 마리가 공간의 주위를 돌았습니다. 재잘재잘 노래하지 못 하고 그저 이 주위만을 날아다니다가, 어디론가 포르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새의 깃털이 제 눈앞으로 떨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유소망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침대였습니다. 아, 꿈을 꾼 것입니다. 아마 오래오래 꿈을 꾼 것일 겁니다. 어느새 아침 햇살은 따사롭게 유리창의 너머까지 비추고 있었습니다. 전날 밤의 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저 포근한 햇살이었습니다.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 유소망은 한 번 더 그 책을 읽어보려 걸음을 떼었습니다. 아무래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아이가 새가 되어 날아간 것일까요? 아니면, 지난 꿈은 대체 무엇일까요.

 서재에 가서 다시 한 번 책을 뽑아들었습니다. '빵을 밟은 소녀'라는 제목이 이제는 머릿속에 기억되어 오래오래 남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 팔락팔락 책을 넘겨보던 유소망은 이상한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어제 자신이 읽었던 내용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아이는 빵을 밟고 연못 안으로 떨어져, 마왕의 할머니의 눈에 띄어 지옥의 접견실 기둥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몇백, 몇천 년의 시간동안 그 곳에 있었다는 것,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왔지만, 자신을 불쌍하게 여긴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 사람이 죽을 때 흘린 눈물이 그에게 닿아 새가 되어 잘못을 회개하고 날아갈 수 있었다는 것 까지 말입니다. 책을 전부 읽은 유소망은 눈을 깜빡였습니다. 어제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잤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소망은 책을 덮었습니다. 새하얀 책의 표지를 한 번 쓸어내렸습니다. 세상에는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비난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은 이해와, 용서와, 포용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책을 책꽂이에 꽂아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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